동북 요녕성 심양2-심양고궁 외
심양고궁(瀋陽故宮)
심양고궁은 북경고궁의 1/12의 규모로 무지막지한 규모의 북경의 그곳에 비하면 상당히 아담한 규모이다.
1625년 여진족의 후금(後金)이 요양(遼陽)에서 심양으로 천도할 때 세운 왕궁으로 1636년에 낙성되었다. 1644년 순치제(順治帝)때 산해관 전투에서 이자성이 이끄는 군대에 승리,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에 입성하게되면서 황궁으로 사용된 것은 태조(太祖) 누루하치와 태종 혼타이지 때까지 약 10년정도뿐. 그러나 북경천도후에도 봉천행궁으로 역대 청조황제들이 동북순행을 하였을 때 종종 이곳을 이용하였다.
심양로(瀋陽路)
고궁 정문 앞으로 놓여있는 심양로는 '청대제일가'(淸代第一街)라고 불리우는 번화가로 양옆으로는 청대의 전통양식으로 세워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성하촌의 분위기가 난다.
무근문撫近門 일대의 심양로
대정전(大政殿)
황제가 제식을 행다던 장소로 '팔각정'이라고도 불리운다.
1636년 청조의 건국행사, 1644년 순치제의 즉위식이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대정전 내부의 옥좌
숭정전(崇政殿)
태종 혼타이지가 집무와 사신접견을 하던 장소. 북경천도후에도 역대청도황제들이 동북순행을 하였을 때 이곳에서 집무를 보았다.
숭정전의 현판
만주어와 한문이 병기되어있다.
숭정전 내부에 있는 황제의 옥좌
봉황루(鳳凰樓)
당시에는 심양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어서 일출을 볼 수 있었던 장소였다고한다. 황제가 회의나 연회를 열던 장소로 황제의 거주지였던 청녕궁(淸寧宮)의 입구이기도 하다.
심양고궁의 내부
장학량구거진열관(張學良舊居陳列館)
천군벌 장작림(張作霖)의 장남이자 서안사변을 주도한 장학량의 왕년의 저택.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대사부'(大師府)라고도 불리운다.
사진은 대청루(大靑樓). 1922년에 세워진 3층 서양풍건물로 천진의 조계지역에 있는 양관을 참고하여 서양인건축가에게 의뢰하여 설계되었다. 동북지방을 제패했던 군벌 장씨집안의 위세를 느낄 수 있는 곳.
노호청(老虎廳)
대청루의 2층에 있는 방. 1929년 장학량이 장작림의 부하이자 야심가였던 양우정(楊宇霆)과 흑룡강성장 상음괴(常蔭槐)를 새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통일을 방해한다는 죄명으로 처형했던 양상사건이 벌어졌던 장소. 이 사건으로 그는 동북지방에서 확고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소청루(小靑樓)
1918년 세워진 이 건물은 중국과 서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건물로 장작림 가족이 거주하던 곳.
소청루의 후면
9·18사변박물관(九·一八事變博物館)
1931년 9월 18일 22:00경, 관동군은 스스로 남만주철도의 류조호(柳條湖) 구간의 선로를 폭파했다. 일본은 이 사건을 중국측에 의한 만행이라고 생떼를 써 중국동북지방에 대한 침략을 개시, 이것이 9·18사변이다.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굴욕적인 류조호사변이 발생한 그 자리에 '왜놈들의 만행을 잊지 말자'라는 슬로건으로 지금의 박물관이 세워졌다.
전시내용은 일제의 만행과 항일 레지스탕스의 활약상으로 우리의 독립기념관과 비슷한 곳이다.
9·18사변박물관의 기념비
작탄비(炸彈碑)
박물관의 한편. 원래는 일제가 만주사변의 업적을 기리기위해 세운 폭탄모양의 기념비였으나 인민들에 의해 넘어진 것으로 일제의 만행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그 당시의 모습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중산광장(中山廣場)
심양역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로타리광장으로 한복판에는 모택동의 동상과 총을 들고 있는 인민들의 릴리프가 서있다.
광장의 주위는 요녕빈관을 비롯한 만주국시대의 건축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요녕빈관(遼寧賓館)
극동의 일류 리조트를 목표로 일제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는 만주의 주요도시에 호화스러운 호텔을 건설하였다. 이 요녕빈관(舊야마토;大和 호텔)은 그중 하나이다. 중산광장의 남서편에 위치.
일제의 이런 작태는 조선에서도 일어나서, 경부철도주식회사는 고종황제가 즉위식을 올렸던 원구단(圓丘壇)을 헐어 버리고 그 자리에 지하1층, 지상3층의 당시로서는 초호화건물이었던 '철도호텔'을 세웠다. 그 철도호텔이 지금의 웨스틴 조선호텔이다.
심양역(瀋陽站)
1908년 일제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약칭 '만철')에 의해 세워진 봉천역(現심양역).
만철은 일개 회사를 떠나 일제가 각종 이권을 노리며 만주침략의 첨병으로 내세웠던 거대한 기관이었다.
서울역과 비슷한 역사의 모습에 놀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경성역(現서울역)과 동경역을 설계한 당시 일본의 명건축가 다쓰노 긴고(辰野金吾)의 제자 오타 쯔요시(太田毅)가 설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스승의 영향을 받아 붉은 벽돌에 흰골조가 들어간 형식은 동경역,경성역,봉천역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100년전의 시설로 현재의 철도물동량을 소화해내기에는 버거워 북쪽 신시가쪽에 있는 심양북역과 이원화되어 운영중이다.
역전에 서있는 탑은 소련전몰병사기념비(蘇聯紅軍陣亡紀念碑)
새로 개장하여 오픈한 심양장거리버스 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