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장안'(長安)이라는 지명으로 한나라 이래 수/당의 도읍지였던 서안.
북경, 남경, 낙양, 개봉, 항주와 더불어 중국 6대고도로 불리우며, 그리스의 아테네, 이집트의 카이로, 이탈리아의 로마와 더불어 세계4대 고도로 꼽히기도 한다.
도시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으로 실크로드의 출발지였었던 곳이기에 서역의 문화가 가장 먼저 중국에 흡수되었던 곳이었다.
대안탑(大雁塔)
당나라때 삼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봉해놓기 위해 세워진 탑.
652년 창건당시에는 5층이었다가 측천무후에 의해 10층으로 개수되었다. 그 후 전란으로 위의 3층이 무너져 지금은 7층밖에 없다. 삼장법사는 인도에서 귀국후 이 사원에서 11년간 채제하면서 경전을 번역했다고 한다.
대안탑
소안탑(小雁塔)
당나라때 의정법사가 인도에서 25년간 체재한 후 가져온 산크리스트경전을 봉해놓은 탑.
창건당시에는 15층의 탑이었지만 1555년 지진으로 상부의 2층이 무너져 현재는 43m에 13층만이 남아있다. .
여행책자에는 위에 올라가면 서안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고 되어있지만 막상 올라가보면 스모그 때문에 뭐 보이지도 않는다.
소안탑
법문사(法門寺)의 진신보탑(眞身寶塔)
시내에서 서쪽으로 115km떨어진 곳에 있는 법문사는 후한대에 창건되었으며 경내의 진신보탑은 명대에 조영된 것으로 8각 13층에 47m의 높이이다,
81년 홍수로 인해 손상된 탑을 수리할 때 우연히 탑밑에서 석가의 손가락뼈로 추정되는 사리4개와 수많은 보물이 발견되면서 이 절은 일약 이 탑 때문에 유명해졌다.
진시황릉
1975년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된 진시황릉. 아직 극히 일부밖에 발굴이 안된 상황이다.
수천기의 병마용으로 이루어진 내부는 촬영불가.
무릉(茂陵)과 곽거병묘(藿去病墓)
서안의 북서쪽 교외, 위하(渭河)의 북쪽편에는 전한(前漢)의 11명의 황제중 9명의 묘소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무제(武帝)의 무릉(왼쪽뒤편)으로서 46.5m 높이의 규모이다.
한편 오른쪽에 누각이 세워져 있는 능묘는 전한시대에 흉노정벌로 이름을 날렸던 장수 곽거병의 것이다. 그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를 총애했던 무제가 자신의 왕릉 곁에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뒤로 보이는 무릉
서안고성 안정문(安定門;서문)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지금의 성곽은 명대에 만들어 진 것이지만 당나라때의 성곽의 넓이는 지금의 6배에 달해서 대안탑과 소안탑도 모두 성곽내에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사진의 안정문은 서안고성 동서남북의 4개의 문중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것으로 옛날 실크로드를 향하는 대상들은 이 문에서 출발을 했었다고 한다.
서안의 구시가
고루(鼓樓)의 뒤쪽에 펼쳐진 화각항(化覺巷)일대에는 골동품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많이 밀집해 있고 회족들이 많이 거주한다.
청진대사(靑眞大寺)
서안에 살고 있는 5만명의 회족(回族;이슬람계)의 종교중심지.
742년에 당왕조가 이슬람교도들을 위해 창건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천명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사진속의 예배대전에는 이슬람교도가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다.
청진대사
이슬람 사원이지만 중국적인 색채가 강하다.
청진대사
청진대사
화청지(華淸池)
서안시내에서 진시황릉 가는 길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화청지는 당 현종(玄宗) 이륭기(李隆基)와 양귀비(陽貴妃)의 로맨스로 유명한 곳이다.
이미 지금으로부터 2700년전인 서주(西周)시대부터 이 일대의 온천이 개발이 이루어져 역대왕조의 이궁 내지는 별장으로 이용되어져왔다. 지금은 돈 몇푼만 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온천지이지만 말이다.
한편 화청지는 1936년에 장학량(張學良)이 국공합작을 이끌어내기 위해 국민당의 장개석(蔣介石)을 감금했던 서안사건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해당탕(海棠湯)
부용탕(芙蓉湯)이라고도 불리는 이 욕실(3.6×2.9m)은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만든 것.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의 무대가 되었던 곳으로 당대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장한가(長恨歌)에서 양귀비가 목욕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하였다.
연화탕(蓮花湯)
현종 전용의 욕실. 현종은 매년 겨울 추위를 피해 이 곳 화청지에서 체재했다고 한다.
성진탕(星辰湯)
당 태종(太宗) 때 만들어진 이 '풀'은 18.2×5m의 규모로 수영시합이 가능할 정도의 규모이다.
후대 황제들이 주로 이용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