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되었던 곳,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창구였던 곳, 그리고 하우스텐보스와 어릴 적부터 들었던 그 유명한 노래 '長崎は今日も雨だった'에 대한 인상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원폭도시'란 이미지보다는 나는 이 도시에대해 뭔가 낭만적인 밝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그런 생각 때문에 이 곳이 일본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었다.
원폭이 떨어진 곳에 지금은 평화공원이라해서 하늘을 향해 팔을 치켜들고 있는 동상(내가 갔었을 적에는 해체공사중)이 있는 공원과 원폭당시에 관한 전시관이 있다. 히로시마원폭이 정확히 명중했던 것에 비해 나가사키의 경우는 목표에서 300m 정도 빗나갔다고 한다. 원래는 고쿠라에 원폭을 떨어뜨리러갔던 비행기가 구름으로 인해 목표를 나가사키로 바꾸었지만 이 곳 또한 구름 때문에 폭탄투하가 불투명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던게 잠시나마 구름이 트인 사이로 미쓰비시조선소가 보였고 그 때를 놓칠새라 원폭이 투하된다. 원폭당시 평화공원쪽은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지만 바다쪽의 구라바가든과 오란다자카, 오유라성당족은 산너머였기 때문에 무사할 수가 있었다.
스와진샤(諏訪神社)
277개의 계단을 올라간 곳에 있는 스와신사는 1625년 기독교계 외국인 주재민들을 위해 세워졌다. 국제도시답계 영어로 된 미꾸지(부적)도 준비되어 있으며 여름에는 축제가 열린다.
스와진샤
오우라천주당(大浦天主堂)
1864년 크리스트교의 신앙이 금지되어있을 적에 외국거류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성당. 국보로 지정되어있음.
입장료250엔을 받던데....
구라바가든에서 본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나가사키조선소.
'구라바가든'은 개항시대 무기무역등으로 갑부가 된 스코틀랜드의 상인 글로버(일본식 발음으로는 '구라바')가 만든 정원.
내부에는 서양식주택과 일본의 전통정원과는 다른 서양식 정원이 있고, 이 곳에서는 미쓰비시조선소와 나가사키시가지가 한 눈에 녀려다 보인다. 나중에는 몰락한 구라바였지만 그가 바로 그 '기린맥주'(요즘에는 우리나라 편의점에서도 구할 수 있음)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원폭당시의 조선소는 평화공원쪽에 있었지만, 현재의 조선소는 전후에 외해쪽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 지은 것이다.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이유가 바로 이 미쓰비시조선소가 타겟이 됐기 때문이었다.
이 조선소에서 각종 군함이 생산되었는데,당시 세계최대최강의 전함 무사시(武臧)도 이곳 미쯔비시조선소에서 건조되었음. 원래 조선소자리의 건너편으로는 러시아영사관이 위치하고 있었기때문에 전함건조의 보안유지를 위해 해군이 영사관앞의 토지를 몽땅 매입해 거대한 창고를 세워버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메가네바시(眼鏡橋)
동경의 니혼바시(日本橋), 이와쿠니(岩國)의 긴타이쿄(錦帶橋)와 더불어 일본 3대 다리중 하나.
로마에서 발전한 아치기술이 서양의 무역상들을 통해 들어와 그 기술을 이용해 1634년에 만들어졌다.
소후쿠지(崇福寺)
나가사키가 옛부터 외국과의 교류가 이어져왔던 것을 보여주는 사찰로 화교들에 의해 세워진 중국풍의 절.
사진의 절입구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