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을 출발한 장강삼협 유람섬은 삼국지의 격전지 적벽에 닿기전에 사시(沙市)에 기항한다. 사시에서 형주까지는 불과 5km.
삼국지 읽다보면 수도 없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삼국지 좀 읽어본 사람치고 아마 '형주' 혹은 옛 지명인 '강릉(江陵)'이라는 곳을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중원의 한복판에 위치한 이 곳은 옛부터 물자운송의 거점이자 전략상 요지로서 삼국시대이후 군웅할거시대에 수많은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던 곳이었다.
형주고성(荊州古城)
유비/손권의 연합군이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격파한 이후 강릉의 지배권은 유비의 손으로 넘어가고 그후 10년에 걸쳐서 이 곳을 지킨 관우가 흙으로 성벽을 쌓아 올렸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이 동네에는 관우를 모시는 사당인 관묘(關苗)를 비롯해 관우에 얽힌 전설과 자취가 많이 남아있다. 현재의 성벽은 청대에 재건된 것으로 성벽은 높이 9m, 둘레 9.3km에 6개의 성문을 갖추고 있다.
6개의 성문중 현재까지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것이 사진속의 대북문大北門(공극문拱極門이라고도 함). 성문뒤쪽으로 관우가 애마 적토마를 씻겨주었다는 세마지(洗馬池)라는 연못이 있다.
형주고성 대북문
한편 동문(東門)밖에 있는 장비일담토(張飛一擔土)이라 불리우는 언덕에도 또한 관우에 대한 전설이 얽혀있다.
어느날, 관우는 9명의 선녀와 성쌓기 시합을 하고 있었다. 이 얘기를 들은 장비가 관우를 돕기위해 흙을 갖고 달려왔지만 이미 시합은 관우의 승리로 끝난 상황이었다. 이에 장비는 갖고온 흙을 성밖에다 버려 버렸다는 데 그 흙더미가 지금의 언덕이라고 한다.
현묘관(玄妙觀)
형주고성내에 있는 도교사원으로 당대에 창건되었다.
사진은 숭대(崇台)위에 있는 현무전(玄武殿)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