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북-하남성 낙양

월드포토 2010. 2. 4. 14:59

 

서안과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고도 낙양.

조조의 본거지였던 낙양.

이 동네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770년의 일로 동주(東周)의 도읍으로 정해진 것이 시초다. 이래 후한, 조조의 위(魏), 서진(西晋), 북위(北魏), 수(隋), 당(唐)등 역대 9개의 왕조의 도읍내지는 부도읍으로 1000여년간 번영을 누렸으나, 당대이후로는 그런 번영을 누릴 기회에서 멀어져졌다.

게다가 낙양은 옛날에는 운하와 황하의 지류인 洛河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여 물류집산지로서도 풍요를 누렸지만 지금은 연안지역에 밀려 그저그런 동네가 되었다.

그러나 천년고도(실제로는 천년도 더 됐다)라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시내에는 옛날의 영화를 느낄 수있는 유적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고 교외에 있다. 동쪽으로 관림묘, 용문석굴, 서쪽으로는 중국에서 최초로 건립되었다는 백마사(白馬寺;현재의 가람은 명대에 재건된 것이지만),그리고 숭산(嵩山) 속에는 그 유명한 소림사가 자리잡고 있다.

 

 

소림사(少林寺)


 
중국에는 오악(五岳)이라 불려지는 5개소의 명산이 있다. 동악의 태산(泰山), 서악의 화산(華山), 북악의 항산(恒山), 남악의 형산(衡山), 그리고 중악의 숭산(嵩山)이 이에 해당하는데 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성지로서의 산악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

중악의 숭산(1512m)은 낙양과 정주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36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림사는 바로 숭산 산속에 위치하고 있다.

소림사로 말할 것같으면 소림권법으로 유명한 곳으로 황실의 비호아래 융성했던 곳이지만 민국정부시절 다수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현재 이곳은 관광지화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무술학교도 다수가 성업중이다. 

 

소림사 대웅보전


 

용문석굴 (龍門石窟)


북위(北魏)의 낙양천도 직후인 494년부터 당대(唐代)까지 7왕조 400여년에 걸쳐 조영된 불교유적.

1km에 걸쳐서 2000여개 이상의 석굴에 작게는 불과 벌레만한 것에서부터 17.14m의 봉선사 마애불까지 10만여기에 달하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둔황의 막고굴(莫高窟), 대동의 운강석불(雲崗石佛)과 함께 중국 3대석불이라 불리어진다. 

 

 

 

봉선사(奉先寺)의 마애불은 용문석굴의 백미이다. 본존의 대불좌상은 당 고종의 기원에 의해 조영이 시작된 이래 후에 여제(女帝)가 된 측천무후의 기부금으로 675년에 완성되어졌다. 실제로 대불의 얼굴은 측천무후를 모델로 해서 만들어 졌다고 한다. 
 

 

 

관림묘(關林廟)

낙양 교외에 위치한 관림묘는 관우의 묘소. 오(吳)의 손권은 조조의 환심을 사기위해 포로로 잡힌 관우의 목을 베 낙양으로 보냈다. 그후 관우는 충의의 상징으로 신격화되어 중국각지에 관묘가 세워지게 된다. 

 

관림묘에서 이어지는 길

 

사진 우측에 보이는 것이 관우의 목이 묻혀있는 묘이다.
 

관림묘의 사당

 

관우의 사당앞에서 향을 피우는 사람들. 이 곳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얼마나 중국인들이 관우를 좋아하는 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북-북경2 고궁(자금성)  (0) 2010.02.11
화북-북경1 천안문광장  (0) 2010.02.10
화북-하북성 승덕 피서산장과 외팔묘  (0) 2010.02.09
화북-하북성 산해관  (0) 2010.02.08
화북-천진  (0) 2010.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