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 흑룡강성 하얼빈

월드포토 2010. 6. 2. 00:08

하얼빈의 도시건설은 1898년 제정러시아가 시베리아 철도의 일부로서 부설한 동청철도의 거점도시로 선택하면서부터이다.
도시계획에 의해 당시 유행하던 아르 누보풍의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도시는 '동방의 모스크바'(東方慕斯科) 혹은 '동방의 작은 빠리'(東方小巴黎)라는 닉네임을 얻게되었다.

1917년 소련공산혁명이후에는 백계(白系)라고 불리던 주로 러시아인 자본가로 구성된 반혁명세력의 일대거점이 되어 발전하기도 했으며 러일전쟁 패전에도 불구하고 백계들에 의해 그 영화는 계속되었다. 만주국시대에는 일제에 점령되기도 했으나 종전과 더불어 하얼빈은 다시 소련에 의해 점령되었고 결국은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신중국이 이 곳의 주인이 되면서 백계들은 체포되기도 하고 일부는 미국등지로 망명을 떠나기도 해 한시대를 풍미했던 러시아인들은 일본인들과 더불어 하얼빈에서 순식간에 그 자취를 감추게된다.

도시 곳곳에는 당시 러시아와 일본이 지배하던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어 여느 중국의 도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성소피아 성당(聖素非亞敎堂)

하얼빈을 대표하는 서양식건물로 높이 53m의 비잔틴양식. 1907년 제정러시아가 주둔군을 위한 종군성당으로 처음 세웠던 성당이었는데 백계상인들의 기부로 확장공사가 행하여져 1932년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성당의 내부는 예배당이 아니라 하얼빈 건축예술관(哈爾濱建築藝術館)으로 꾸며져 개방되고 있다.

'동방의 모스크바' / '동방의 작은 빠리'라고 불리게된 유래를 과거 하얼빈의 고건축물의 모형과 사진, 그림을 통해 전시하고 있다.
 

중앙대가(中央大街)
하얼빈을 대표하는 명소로 방홍기념탑에서부터 시작되어 뻗어있는 유럽풍의 거리.
길이는 1450m로 길 양사이드에는 아르 누보풍과 유럽풍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보행자전용인 도로에는 화강암을 깍아만든 보도블럭이 깔려있다. 제정러시아가 1900년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현재는 약 30여동의 클래식한 건물들이 남아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건물이 왼쪽에 있는 당시 일본계 백화점 마츠우라 양행(松浦洋行;現신화서점)과 유태계 러시아인이 세운 오른쪽의 핑크색 건물 Modern Hotel(馬迭爾賓館 ☆☆☆☆).
 

중앙대가

 

중앙대가는 하얼빈 제일의 번화가이자 쇼핑가.
저녁이나 주말이 되면 놀러나온 시민들로 북적거린다.
 

동북열사기념관(東北烈士紀念館)
사연도 많은 건물이다. 처음에는 1928년도에 시민도서관으로 세워졌으나, 만주국 성립이후는 헌병대사령부로 사용되어 일제에 대항하던 동북인민들을 강금/고문/탄압하던 장소역할을 했다. 해방후에는 동북지방에서 항일전쟁과 對국민당 내전중에 희생된 열사들을 기려 1948년 10월 10일 기념관/박물관으로 정식개관. 내부에는 혁명열사 229인의 업적과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스탈린 공원(斯大林公園)
방홍기념탑을 중심으로 송화강을 따라 서울의 한강시민공원같이 조성되어 있는 강변의 공원. 독특한 조경이 인상 깊다.

방홍기념탑(防洪紀念塔)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길림, 하얼빈등을 지나 흐르는 송화강은 흑룡강의 지류. 내륙수운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여름에는 뱃놀이의 장소, 겨울에는 두께 2m정도로 얼어 천연스케이트장으로써 하얼빈 시민들의 휴식의 장소가 되지만 한번 홍수라도 났다하면 하얼빈시민들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였다. 역사에 기록된 가장 큰 홍수가 1957년에 일어난 것으로 탑의 기단에는 당시의 수위가 표시되어 홍수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말해준다. 당시 하얼빈시민들은 일치단결하여 필사적으로 홍수를 이겨내었고 그 것을 기념하여 스탈린공원 한복판에 지금의 탑을 세워진 것이다.

 

송화강변

한여름 더위를 피해 그늘밑으로 몰려든 시민들.

 

하얼빈 공대
사진보다 실물로 보면 상당히 웅장한 건물이다.